가을 바람
-브람스 '클라리넷 오중주'-
-전략-
가을이 되면 브람스가 알맞다.
가을 저녁에 적당한 음악은 역시 브람스다.
브람스를 편안히 즐기기는 좀처럼 쉽지 않지만
여름 산하가 초록에 지치는 것처럼 어떤 불끈거림이 지나가면 조용히 귀에 잦아들기 시작하는 것이 브람스다.
나도 이제 듣기 시작한 지 이삼 년 즈음에 불과하지만 차츰 그의 관조에 참여하는 게 아닌가 싶다.
브람스의 '클라리넷 오중주'는, 결코 화려하다고 할 수 없는
어떤 인생이 화려하지 않은 살구나무 이파리의 빛깔 곁에서 자신의 삶을 되살펴보는 것 같은 음조다.
어느 날은 비가 오고 어느 날 아침엔 이슬이 내렸다.
이 이슬 맺힌 숲길을 걸어서 먼 산기슭에 닿곤 했다거나
어느 여름은 폭풍이 쳐서 많은 것을 잃었지만 그래도 견딜 만했다거나 하는 내용들이다.
또는 그해에는 애인을 잃었거나 그해에는 또 다른 사랑이 찾아 왔었다.
그 사랑는 눈길 위에 핏방울 자국이 찍힌 것처럼 비극적이었다.
그러나 사랑도 담담해지지 않을 수 없는 시간이 반드시 오리라는 사실을 이 음조는 가르쳐주는 것 같다.
더블어 '어느 면에서 내 인생은 비굴한 바 없지 않았다, 부끄러운 이야기다' 라는 자기 고백이 애절하게 묻어 나오기도 한다.
그런 성찰의 거울과 같은 멜로디야말로 가을의 음악이고 브람스의 음악이 아닌가 생각하게 한다.
2악장 아다지오의 서술은 그야말로 만연체의 담담한 인생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클라리넷이라는 목관의 인간적 호흡이 우리의 호흡과 함께하는 것도 그 서술의 애절함을 더해 준다.
인생 전반에 대한 자문의 형식으로 진행되는 2악장에서 넘어가면 3악장은 그 자문에 대한 여러 형태의 답들을 제시한다.
'그래 그러하였지, 그러나 사랑은 아직도 내 영혼을 물들여'하는 듯한 따스한 격정이 있는가 하면
물속 저 깊이로 침잠하는 듯 죽음의 호흡이 어어지기도 한다.
1악장과 마지막 악장은 같은 주제음들의 변주로 장식된다.
앞으로 나오는 빛이 아니라 뒤로 스며드는 빛으로 장식된 영혼의 수사들이 청동 빛으로 연결되고 있다.
-하략-
-장석남산문집-'물긷는 소리'中,해토출판.2008.
2008.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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