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드문 음악실에서
밤 이슥해 손님 드문 인사동 '르네상스'에서 차를 마시며
바르톡의 현악 사중주 4번 4악장을 듣고 있던 예수와 니체,
예수가 말했다.
"활로 그으라고 만든 걸
저렇게 모질게 뜯어도 되나?"
잔을 놓으며 니체가 말했다.
"인간의 형이상학이 인간의 손에 분해되는군요."
옆좌석에서 인간 하나가 중얼대듯 말했다.
"긋든 뜯든 도저(到底)한 소리만 얻으면 되지요."
'모진' 악장이 끝나자 예수가 나직이 말했다.
"큰 바위가 분해되면 비 몇 번 와도 사막이 아니겠는가."
니체가 혼잣말하듯,
"인간이 건널 수 있는 사막이라면."
옆 좌석에서 인간이 몸부림쳤다.
그날, 회현동 집
그날 회현동 집, 하루 종일 눈
내리다 말다 했다.
남산 언덕 눈 쓴 전나무들
보이다 말다 했다.
그리워하다 말다 했다.
“위험하게 살아라!”
니체가 말했다.
난로 위에서 주전자 물이 노래하며 끓었다.
노래로 사는 게 가장 위험하게 사는 것.
노래 끊기면
잦아들 뿐.
마지막으로 숨 한번 푹 내쉬고
물이 잦았다.
노래는?
난로 위에서 주전자가 환한 돛처럼 타올랐다.
(황동규, ‘우연에 기댈 때도 있다’, 문학과 지성사, 2003)
- 황동규 '젊은 날의 결'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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