言/빈가슴속心

숭원

oldhabit 2010. 5. 24. 22:02

이미 돌아 가신지 여러 해

숭원스님

그 분이 나이 드셔서 계를 반납하신 언저리인 그 전이나 후의 숭원스님이 아니라

내 어릴 적 만나 뵙던 그 분이 짙다.

보고싶다거나, 궁금하다거나, 고맙다거나, 그런 감정이 없진 않지만,

그 시절에 맞춘 그 분의 모습과 나눔이 보임이다.

이쯤의 나이가 들고 나니 돌아다 보아지는 것들이 더러더러 있다.

의식적으로 떠 올리고 싶지 않은 것과, 잊을 듯 까마득, 어렴 풋, 그래서 잊고 싶지 않아 자꾸 되 짚어 보는,

그런 것들이,

백운암과 스님의 모든 것은 후자이다.

절이 놓인 그 산의 앞자락과  뒷태,

가파르지만 오랜 세월 사람이 밟아 길이 된 바위계단,

늘 변함없는 물의 깊이와 색,그리고 소리들,

사계절마다가 어김없이 반가운 얼굴로만 맞아 주는,

옛날 옛날이라 산도 깊고 골도 깊어 사람드물어 좋음으로만 남았나 보다.

무엇보다 백미는 백운산의 아침 얼굴이다.

구름이 중간에 드리우면 산 아래 동네의 모습은 간데 없이 온통이 산 뿐이다.

수 십년 지난 일인데 어제 본 풍경처럼 너무도 선명해, 그 물에 손을 넣을 뻔 한다.

생각만으로의 오르가즘인가보다.

하도 혼자 견디며 가슴으로만의 그리워하는 사랑을 하고 살아서 인가.

앉아서도, 난 여러가지에서 절정을 맛 본다.

사는 일엔 아직 벗어나지 못한 철부지인가,

완숙한 도승의 경지인가?

그러고 보면 나름나름은....

내게 언제나 가장 좋은 것을 주셨던 분이라 지금도 선명한가? 너무 생생하다 모든 것들이,

과일을 주셔도 가장 크고 실한 것들만 고르시고 사탕도 과자도 가장 먼저,  내 양이 넘치도록,'이만하면 충분해요 스님!'이란 맘이 들도록,

거절이나 사양하지 않아도 미안하지 않고 , 당연히 받아 들어, 내 것으로만 다 가질 수 있게 주는 재주가 있으신 분,

절을 뒤로 하고 내려 오는 길을  끝까지 지켜 주시 듯, 서 계시던, 인자하고도 따뜻한,그 느낌,

살다살다 보면 아직도  이등인데, 꼭 일등이고 싶은 그에게서도 난 여전히 이등일뿐!

그 분 앞에서는 내가 최고도 되었고, 귀한 사람으로 설 수도 있었던,

살다가 거친말과 모진 생각을 하는 순간 그 분이 떠 오름은,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여리고  단정한 여자임을 말씀으로 하진 않지만,

그렇게 인정하심을 믿어 의심하지 않게 하시던 그 분 때문인가 보다.

오래되어 빛 바래, '너덜너덜' 할 줄만 알았는데

스님을 생각하며 글을 쓰는데,

내 눈 앞에 꽃비가 내린다.

그리고 몹시도 많이 내린 눈 덮인 절 앞 마당이 너무도 생생히 떠 오른다.

장삼을 입고 여자인 듯 남자인 듯 서 계신 그 분이 내 눈앞에서 희다!

참 희다.

정말 하얗다!

 

        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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