言/사는이치知

책 - 피에르 신부의 고백

oldhabit 2010. 9. 6. 02:57

  < 피에르 신부의 고백 > 피에르 신부, 마음산책

 

2학기엔 개인적으로 책 읽을  시간을 내기 어려울 것 같다. 피에르 신부의 이 책은 최근 아는 이가 <단순한 기쁨>을 빌려달라기에 신부님의 책을 찾다가 옆에 있어 읽게 되었다. 책은 얇지만 내용은 피에르 신부가 평생 한 중요한 말들만 뽑아 깊다. 짧은 잠언들의 연속이라 전철을 타고 다니며 읽어도 부담이 없었다.

책을 읽으며 사랑과 연대(우정)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기회가 되었다.

그의 말 몇 마디를 인용해본다.

 

시랑은 영원하신 하느님의 존재 그 자체이다.

사는 건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랑을 하려면 자유로워야 한다. 자유가 없는 곳에 사랑이 있을 수 없다.

인생은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주어진 얼마간의 자유시간이다.

자유로운 인간의 상징, 그것은 사랑하는 인간이다.

살면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 함께 나눈 경험들이 우리의 정신을 형성한다.

인생은 우리가 부여하는 색채들의 반영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의 삶을 가꾸는 것은 우리의 할 일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사랑을 듬뿍 담는 것이다.

모든 인간적 사랑에는 고통이 뒤섞여 있다.

우리는 모두 책임이 있다. 우리 자신에 대해 책임이 있으며, 서로에 대해 책임이 있다. 바로 거기에 인간의 위대함이 있다.

행동에 나서려면 어떤 사태나 사건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그 안전한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소유하는 것은 우리가 줄 수 있는 것뿐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는 소유자가 아니라 소유당한 자일 뿐이다.

고통 없는 사랑은 없으며, 있을 수도 없다.

홀로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사랑할 것인가, 우리가 끊임없이 이 선택을 해야 한다.

개인적 핑계와 타인들 없이 행복하고자 하는 비겁한 마음이 끊임없이 우리를 사로잡는다. 매일매일 그것을 버려야만 한다.

학교는 세상 돌아가는 일을 가르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우리 존재가 무엇인지를 깨닫도록 사람들의 정신을 열어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불의란 불평등이 아니라 나누지 않음이다.

우정만이 현실이다. 우정이란 서로를 겸허하게 존중하는 가운데 하기 힘들지만 꼭 필요한 선행들을 완수하기 위해 함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나는 고통받는 이들의 고통으로 인해 고통받는다.

우리는 만남을 통해서만 존재한다.

대중에게 빵보다 귀중한 것이 있다면 그건 자유다. 그런데 어떤 경우엔 그보다 더 귀중한 것이 있다. 그것은 살 맛이요, 살아야 할 최소한의 이유다.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을 먼저 보살피라'는 법을 지키는 한 문명은 살아남는다.

동물이건 식물이건 또는 인간의 것이건 세속의 삶이 갖는 경이로움은 우리의 척추와도 같다.

우리는 별이 빛나는 밤의 장엄한 광경과, 빙하의 위대함, 예술작품의 아름다움 앞에서 눈을 뜨고 있어야 한다. 어느 날  세상의 눈부신 광채에 넋을 잃어보아야 그 경이로운 순간들 없이는 더 이상 살 수 없어서 그것들을 다시 찾고 기억하게 되기 때문이다.

자유롭다는 건 무엇보다 타인들을 존중할 줄 아는 것이다.

미소는 전기보다 덜 비싸지만 훨씬 밝은 빛을 제공한다.

우정은 아름답고 힘든 것을 함께 할 때 마음에 찾아온다.

나는 네게 줄 것이 하나도 없다. 다만 우정과 타인들을 구원하기 위한 나의 노력을 함께 나누자는 호소 외에는.

나는 새로운 노예제가 생겨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중심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 산업이 되어버렸다.

연대야말로 모든 불행을 치유해줄 유일한 치료제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 우리가 다가갈 수 없는 그런 부분은 언제나 남아 있다.

근본적으로 사회란 운명에 의해 엮인 사람들간의 조화, 그들 모두에게 각자의 운명을 완수하게 해주고, 인격과 타고난 소질을 계발할 수 있게 해주는 조화가 아니겠는가?

사실 시민적 차원에서, 사회적 차원에서, 집단과 공동체적 차원에서 인간의 의식에는 공동선이라는 개념과 개개인의 발전이라는 개념이 담겨 있어야 한다. 공동선은, 구성원들의 의식 있고 조화로운 교류의 결과이자 원인이 되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다. 이는 구성 요소 가운데 가장 작은 기관이라도 사어 입으면 나머지 모두가 열이 나게 되고, 그리하여 결국 죽거나 아니면 회복되려고 서로 협력하는 인간의 몸과 마찬가지다.

한 사회의 질병은 바로 사회의 무관심이다. 그리고 이 무관심은 곧 구성원들 가운데 가장 힘없는 자들의 운명에 대한 무지로 변한다.

배고픔을 이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곁에 있어주는 사람들이 요구된다.

 인생에서 망쳐서는 안 될 본질적인 두 가지는 바로 사랑하는 것과 죽는 것이다.

용서, 그것은 하느님의 모성적 측면이라 할 수 있다. 사랑하는 어머니는 언제나 자식을 용서한다.

하느님은 천국에 계시는 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당신에게 말하고 있는 이 변변찮은 사람 안에 계시다. 그리스도는 이 건달, 이 도둑, 이 거짓말쟁이로 강생해 계시다. 하느님의 영광은 말을 하는 하는 나로, 그것을 읽는 당신으로 강생해 계시다. 

인간의 유일한 자유, 그것은 계속 돛을 펼치고 있을 것이냐 아니면 지쳐 그것을 놓아버릴 것이냐 하는 것이다. 바람은 우리의 소관이 아니다. 

삶 자체에 필요한 것, 그것은 바로 연대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부조리, 그것은 '살아야 할 이유 없이' 살아 있는 것이다.

       글:사랑산 -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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