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난 길을 걷고 있었다.
길 한가운데 깊은 구멍이 있었다.
난 그곳에 빠졌다.
난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
그 구멍에서 빠져나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2
난 길을 걷고 있었다.
길 한가운데 깊은 구멍이 있었다.
난 그걸 못 본 체했다.
난 다시 그곳에 빠졌다.
똑같은 장소에 또다시 빠진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빠져나오는 데
또다시 오랜기간이 걸렸다.
3
난 길을 걷고 있었다.
길 한가운데 깊은 구멍이 있었다.
난 미리 알아차렸지만 또다시 그곳에 빠졌다.
그건 이제 하나의 습관이 되었다.
난 비로소 눈을 떴다.
난 내가 어디 있는가를 알았다.
그건 내 잘못이었다.
난 얼른 그곳에서 나왔다.
4
내가 길을 걷고 있는데
길 한가운데 깊은 구멍이 있었다.
난 그 둘레로 돌아서 지나갔다.
5
난 이제 다른 길로 가고 있다.
- 류시화
두려움 때문이리라!
소름이 돋도록 무서움 때문이리라
아파 본 자만이 그 아픔의 색을 알고
죽음의 문턱을 밟아 본 자만이
그 냄새를 앎이다.
한 번의 버리고 돌아섬과
한 번의 버려짐의 돌아섬,
그리고
난,
이제 그 어느것도 원치않음이 "죽은 세포가 그 가지로 돌아가지 않음" 이란 어느 시인의 말처럼,
그저 세상이 회색임일 뿐......,
그래도,
살아야 하는 이유가
오늘도 내게는 있다!
이것이 이 땅에서 지은 내 죄값이였다.
2007.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