言/빈가슴속心

다섯연으로 된 짧은 자서전

oldhabit 2008. 5. 20. 19:30

1

난 길을 걷고 있었다.

길 한가운데 깊은 구멍이 있었다.

난 그곳에 빠졌다.

난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

그 구멍에서 빠져나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2

난 길을 걷고 있었다.

길 한가운데 깊은 구멍이 있었다.

난 그걸 못 본 체했다.

난 다시 그곳에 빠졌다.

똑같은 장소에 또다시 빠진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빠져나오는 데

또다시 오랜기간이 걸렸다.


3

난 길을 걷고 있었다.

길 한가운데 깊은 구멍이 있었다.

난 미리 알아차렸지만 또다시 그곳에 빠졌다.

그건 이제 하나의 습관이 되었다.

난 비로소 눈을 떴다.

난 내가 어디 있는가를 알았다.

그건 내 잘못이었다.

난 얼른 그곳에서 나왔다.


4

내가 길을 걷고 있는데

길 한가운데 깊은 구멍이 있었다.

난 그 둘레로 돌아서 지나갔다.


5

난 이제 다른 길로 가고 있다.

 

- 류시화

 


 

두려움 때문이리라!

소름이 돋도록 무서움 때문이리라

아파 본 자만이 그 아픔의 색을 알고

죽음의 문턱을 밟아 본 자만이

그 냄새를 앎이다.

한 번의 버리고 돌아섬과

한 번의 버려짐의 돌아섬,

그리고

난,

이제 그 어느것도 원치않음이 "죽은 세포가 그 가지로 돌아가지 않음" 이란 어느 시인의 말처럼,

그저 세상이 회색임일 뿐......,

그래도,

살아야 하는 이유가

오늘도 내게는 있다!

 

이것이 이 땅에서 지은 내 죄값이였다.

 

          2007.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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