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 따라가며 울다 내 몸속에 석가탑하나 세워놓고 내꿈속에 다보탑하나 세워놓고 어느 눈내리는 날 그 석가탑 쓰러져 어느 노을 지는 날 그 다보탑 와르르 무너져내려 눈 녹은 물에 내 간을 꺼내 씻다가 눈 녹은 물에 내 심장을 꺼내씻다가 그만 강물에 흘려보내고 울다. 몇날며칠 강물을 따라가며 울다.... 강물따라가.. 言/오래묵을詩 2008.06.06
걸친 엄마 걸친, 엄마 -이경림- 한 달 전에 돌아간 엄마 옷을 걸치고 시장에 간다 엄마의 팔이 들어갔던 구멍에 내 팔을 꿰고 엄마의 목이 들어갔던 구멍에 내 목을 꿰고 엄마의 다리가 들어갔던 구멍에 내 다리를 꿰! 고, 나는 엄마가 된다 걸을 때마다 펄렁펄렁 엄마 냄새가 풍긴다 "엄마…" "다 늙은 것이 엄마는.. 言/오래묵을詩 2008.06.06
여우비 시간 속에 늙어온 남자가 후드득 후드득 비를 맞는다 둔해 가던 감각들이 깜짝깜짝 놀라면서 비를 맞는다 탯줄에 매달린 애처럼 애호박이 점점 살찌는 여름 물로 가득한 줄기들은 꿈틀거리며 태양을 향해 기어오르고 자라나며 굵어지던 등뼈 속에 점점 커지던 얼굴 속에 쭈굴쭈굴 시들던 꿈의 떡잎, .. 言/오래묵을詩 2008.06.06
해인으로 가는 길 해인으로 가는 길 -도종환- 화엄(華嚴)을 나섰으나 아직 해인(海印)에 이르지 못하였다 해인(海印)으로 하는 길에 물소리 좋아 숲 아랫길로 들었더니 나뭇잎 소리 바람 소리다 그래도 신을 벗고 바람이 나뭇잎과 쌓은 중중연기 그 질긴 업을 풀었다 맺었다 하는 소리에 발을 담그고 앉아 있다 지난 몇십.. 言/오래묵을詩 2008.06.06
별까지는 가야 한다.... 별까지는 가야 한다 ........ -마종기- 우리 삶이 먼 여정일지라도 걷고 걸어 마침내 하늘까지는 가야 한다 닳은 신발 끝에 노래를 달고 걷고 걸어 마침내 별까지는 가야 한다 우리가 깃들인 마을엔 잎새들 푸르고 꽃은 칭찬하지 않아도 향기로 핀다 숲과 나무에 깃든 삶들은 아무리 노래해도 목 쉬지 않.. 言/오래묵을詩 2008.05.27
천년 천년 -강제윤- 비가 오고 아들은 죽순처럼 자랐다 어머니는 길 떠나는 아들의 새벽밥을 지었다 아들은 가시덤불을 지나 잣밤나무 숲으로 사라졌다 바람이 불고 거대한 숲이 흔들렸다 아들의 머리에 서리가 내렸다 어머니는 눈썹이 희어졌다 돌아온 아들은 서럽게 울었다 밤이 기울도록 어머니는 잠들.. 言/오래묵을詩 2008.05.24
북극성 북극성 -정호승- 신발끈도 매지 않고 나는 평생 어디를 다녀온 것일까 도대체 누구를 만나고 돌아와 황급히 신발을 벗는 것일까 길 떠나기 전에 신발이 먼저 닳아버린 줄도 모르고 길 떠나기 전에 신발이 먼저 울어버린 줄도 모르고 나 이제 어머니가 계시지 않는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와 늙은 신발을 .. 言/오래묵을詩 2008.05.24
누름돌 누름돌 -김인호- 어쩌다 강가에 나갈 때면 어머니는 모나지 않은 고운 돌을 골라 정성껏 씻어 오셨다 김치의 숨을 죽여 맛을 우려낼 누름돌이다 산밭에서 돌아와 늦은 저녁 보리쌀을 갈아낼 확돌이다 밤낮 없는 어머니 손 때가 묻어 반질반질한 돌멩이들이 어두운 부엌에서 반짝였다 그런 누름돌 한 .. 言/오래묵을詩 2008.05.24
막걸리 막걸리 -천상병- 나는 술을 좋아하되 막걸리와 맥주밖에 못 마신다. 막걸리는 아침에 한 병(한 되) 사면 한홉짜리 적은 잔으로 생각날 때만 마시니 거의 하루 종일이 간다. 맥주는 어쩌다 원고료를 받으면 오백 원짜리 한 잔만 하는데 마누라는 몇달에 한번 마시는 이것도 마다한다. 세상은 그런 것이 .. 言/오래묵을詩 2008.05.24
상사 想 思 -김남조- 언젠가 물어보리 기쁘거나 슬프거나 성한 날 병든 날에 꿈에도 생시에도 영혼의 철사줄 윙윙울리는 그대 생각 천번 만번 이상하여라 다른 이는 모르리 사시사철 내 한 평생 골수에 전화오는 그대 음성 언젠가 물어보리 죽기 전에 단 한번 물어보리 그대 혹시 나와 같았는지를 言/오래묵을詩 2008.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