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림 어부림 -손택수- 딴은 꽃가루 날리고 꽃봉오리 터지는 날 물고기들이라고 뭍으로 꽃놀이 오지 말란 법 없겠지 남해는 나무그늘로 물고기를 낚는다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짙은 그늘 물 위에 드리우고 그물을 끌어당기듯, 바다로 흰 우듬지에 잔뜩 힘을 주면 푸조나무 이팝나무 꽃이 때맞춰 떨어.. 言/오래묵을詩 2008.08.02
물푸레나무에게 쓰는 편지 물푸레나무에게 쓰는 편지 -이상국- 너의 이파리는 푸르다 피가 푸르기 때문이다 작년에 그랬던 것처럼 잎 뒤에 숨어 꽃은 오월에 피고 가지들은 올해도 바람에 흔들린다 같은 별의 물을 마시며 같은 햇빛 아래 사는데 네 몸은 푸르고 상처를 내고 바라보면 나는 온몸이 꽃이다 오월이 오고 또 오면 언.. 言/오래묵을詩 2008.08.02
그래도 저는 그래도 저는 - 이외수- 그래도 저는 촛불입니다 예전에는 심지를 태우는 아픔으로 온 방안을 환하게 밝힌다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요즘은 아무리 많은 심지를 태워도 이 세상의 어두움은 쉽게 물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에 전율감을 느낍니다 그래도 저는 촛불입니다 눈부시게 타겠습니다 言/오래묵을詩 2008.07.12
능소화연가 능소화 연가 -이해인- 이렇게 바람 많이 부는 날은 당신이 보고 싶어 내 마음이 흔들립니다. 옆에 있는 나무들에게 실례가 되는 줄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가지를 뻗은 그리움이 자꾸자꾸 올라갑니다. 저를 다스릴 힘도 당신이 주실 줄 믿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내게 주는 찬미의 말보다 침묵 속에도 불.. 言/오래묵을詩 2008.07.12
먼 곳에서부터 먼 곳에서부터 -金洙暎 - 먼 곳에서부터 먼 곳으로 다시 몸이 아프다 조용한 봄에서부터 조용한 봄으로 다시 내 몸이 아프다 여자에게서부터 여자에게로 능금꽃으로부터 능금꽃으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몸이 아프다 <1961. 9. 30> 言/오래묵을詩 2008.06.23
질경이의 노래 질경이의 노래 -김문억- 키 크기가 싫어서 난 땅에 붙어 살고 있다 꺾어지기 싫어서 난 키 크기를 포기했다 그 누가 나를 밟기 전에 미리 내가 나를 밟고 산다 처음부터 땅을 믿고 온몸으로 붙잡았다 올려다 보는 것은 해 하나면 족하다 하지만 외로운 건 싫어서 길 섶에서 살고 있다. 들려오는 소리를 .. 言/오래묵을詩 2008.06.22
그 투명한 내 나이 스무살에는 그 투명한 내 나이 스무 살에는 -이외수- 그 투명한 내 나이 스무살에는 선잠결에 스쳐가는 실낱같은 그리움도 어느새 등넝쿨처럼 내 몸을 휘감아서 몸살이 되더라 몸살이 되더라 떠나 보낸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세상은 왜 그리 텅 비어 있었을까 날마다 하늘 가득 황사 바람 목메이는 울음소리로 불.. 言/오래묵을詩 2008.06.21
솟구쳐 오르기2 솟구쳐 오르기 2 -김승희- 상처의 용수철 그것이 우리를 날게 하지 않으면 상처의 용수철 그것이 우리를 솟구쳐 오르게 하지 않으면 파란 싹이 검은 땅에서 솟아오르는 것이나 무섭도록 붉은 황토밭 속에서 파아란 보리가 씩씩하게 솟아올라 봄바람에 출렁출렁 흔들리는 것이나 힘없는 개구리가 바위 .. 言/오래묵을詩 2008.06.18
벌레의 별 벌레의 별 -류시화- 사람들이 방안에 모여 별에 대한 토론을 하고 있을 때 나는 문 밖으로 나와서 풀줄기를 흔들며 지나가는 벌레 한 마리를 구경했다 까만 벌레의 눈에 별들이 비치고 있었다 그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나는 벌레를 방안으로 데리고 갔다 그러나 어느새 별들은 사라지고 벌레.. 言/오래묵을詩 2008.06.18
주점 일체의 수속이 싫어 그럴 때마다 가슴을 뚫고드는 우울을 견디지 못해 주점에 기어들어 나를 마신다 나는 먼저 아버지가 된 일을 후회해 본다. 필요 이상의 예절을 지켜야 할 아무런 죄도 나에겐 없는데 살아간다는 것이 지극히 우울해진다 한때 이 거리가 화려한 화단으로 보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 言/오래묵을詩 2008.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