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란지교를 꿈꾸며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살았으면 좋겠다. 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도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 밤 늦도록 공허한 마.. 言/오래묵을詩 2008.05.24
주점 주점 -조병화- 일체의 수속이 싫어 그럴 때마다 가슴을 뚫고 드는 우울을 견디지 못해 주점에 기어들어 나를 마신다. 나는 먼저 아버지가 된 것을 후회해 본다. 필요 이상의 예절을 지켜야할 아무런 이유도 나에겐 없는데 살아간다는 것이 지극히 우울해진다. 한때 이 거리가 화려한 꽃밭으로 보이던 .. 言/오래묵을詩 2008.05.24
그는 그는 -정호승- 그는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 조용히 나의 창문을 두드리다 돌아간 사람이었다 그는 아무도 나를 위해 기도하지 않을 때 묵묵히 무릎을 꿇고 나를 위해 울며 기도하던 사람이었다 내가 내 더러운 운명의 길가에서 서성대다가 드디어 죽음의 순간을 맞이했을 때 그는 가만히 내 곁.. 言/오래묵을詩 2008.05.24
저문 외길 박남준이란 시인이 이런 시를 쓴 적이 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미어져가는 것 그는 모르는지 길 끝까지 간다 가는데 갔는데 기다려본 사람만이 그 그리움을 안다 무너져 내려본 사람만이 이 절망을 안다 저문 외길에서 사내는 운다 소주도 없이 잊혀진 사내가 운다 -저문 외길에서 나는 어떤 그리움.. 言/오래묵을詩 2008.05.24
공존의 이유 공존의 이유 -조 병 화 - 깊이 사랑하지 않도록 합시다. 우리의 인생이 그러하듯이 헤어짐이 잦은 우리들의 세대 가벼운 눈웃음을 나눌 정도로 지내기로 합시다. 우리의 웃음마저 짐이 된다면 그때 헤어집시다. 어려운 말로 이야기하지 않도록 합시다. 당신을 생각하는 나를 애기할 수 없음으로 인해 .. 言/오래묵을詩 2008.05.24
무등을 보며 무등을 보며 -서정주- 가난이야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여름 산 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청산이 그 무릎 아래 지란(芝蘭)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엔 없다. 목숨이 가다가다 .. 言/오래묵을詩 2008.05.24
기도 기도 -구 상- 땅이 꺼지는 이 요란 속에서도 언제나 당신의 속사귐에 귀 기울이게 하옵소서. 내 눈을 스쳐가는 허깨비와 무지개가 당신 빛으로 스러지게 하옵소서. 부끄러운 이 알몸을 가리울 풀잎 하나 주옵소서. 나의 노래는 당신의 사랑입니다. 당신의 이름이 내 혀를 닳게 하옵소서. 이제 다가오는 .. 言/오래묵을詩 2008.05.24
참회록 참회록/윤동주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王朝)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懺悔)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 24년 1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 그.. 言/오래묵을詩 2008.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