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1월 -이외수- 세상은 저물어 길을 지운다 나무들 한 겹씩 마음 비우고 초연히 겨울로 떠나는 모습 독약 같은 사랑도 문을 닫는다 인간사 모두가 고해이거늘 바람은 어디로 가자고 내 등을 떠미는가 상처 깊은 눈물도 은혜로운데 아직도 지울 수 없는 이름들 서쪽 하늘에 걸려 젖은 별빛으로 흔들리는 1.. 言/오래묵을詩 2009.11.24
까치밥 까치밥 -워낭- 팔작八鵲 계집애야 까치 같은 계집애야 저 감나무 우듬지에 달랑 살랑 밥 열렸다 동녘서녘 노을꽃에 된서리로 뜸을 들여 콩당 가슴 뭉클 눈물 내가 지어 내걸었다 네가 즐길 허공만찬 붉은 눈물 한줌이다 과아악곽 꽈아악꽉 言/오래묵을詩 2009.11.24
오십과 육십 사이 오십과 육십 사이 해야할 사랑을 다하고 이제는 그만 쉬고 싶은 나이. 아직 하지 못하였다면 더 늙기 전에 다시 한번 해보고 싶은 나이. 우연이든 인연이든 아름다운 착각의 숲에서 만난 필연이라 여기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은 나이.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이 없겠느냐고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 言/젖지않을江 2009.11.19
### 참새가 겨울을 사는 법 첫눈이 의외로 일찌감치 정선땅을 방문했다. 눈을 구경하려고 헌 교회 창고 옆을 지나가는데 참새가 후미진 구멍 속에서 퍼뜩 튀어나온다. 날아가지도 않는다. 슬금슬금 내 눈치를 보는 듯 구멍을 맴돈다. 작은 구멍 속을 들여다보니 버려진 나뭇가지 잎 사이로 새들의 집이 보.. 言/젖지않을江 2009.11.09
구부러진다는 것 구부러진다는 것 -김정록- 잘 마른 핏빛 고추를 다듬는다 햇살을 차고 오를 것 같은 물고기에게서 반나절 넘게 꼭지를 떼어내다 보니 반듯한 꼭지가 없다, 몽땅 구부러져 있다 해바라기의 올곧은 열정이 해바라기의 목을 휘게 한다 그렇다, 고추도 햇살 쪽으로 몸을 디밀어 올린 것이다 그 끝없는 깡다.. 言/오래묵을詩 2009.11.04
나는 나는 乙이다 -김장호- 나는 乙이다, 항상 부탁하며 살아가는 원래 낯가림이 심해 낯선 사람과 잘 사귀지 못했지만 그나마 조금씩 염치없어져 乙로 살아가지 당신은 넘볼 수 없는 성채의 성주 당신 앞에 서면 한없이 낮아진다네 나를 사준다는 보장은 없지만 당신 눈도장 찍느라 하루해가 모자라네 당.. 言/젖지않을江 2009.11.04
일 잘 하는 사내 일 잘 하는 사내 -박경리- 다시 태어나면 무엇이 되고 싶은가 젊은 눈망울들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다시 태어나면 일 잘하는 사내를 만나 깊고 깊은 산골에서 농사짓고 살고 싶다 내 대답 돌아가는 길에 그들은 울었다고 전해 들었다 왜 울었을까 홀러 살다 홀로 남은 팔십노구의 외로운 처지 그것이 .. 言/오래묵을詩 2009.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