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윤곽 감정의 윤곽 -권현형- 아름다운 시란 아편 혹은 술이다. 그것은 신경장애를 없애주는 섭취물이다. -바슐라르 막걸리를 마시다가 당신은 하루 종일 눈물이 흐른다고 했다 결국은 싸움인데, 싸움에서 지면 안되는데 진흙 속에서 싸우는 것보다 물과 싸우는 건 어렵다 물이 묽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 言/오래묵을詩 2010.03.16
노래 노래 -강정- 숨을 뱉다 말고 오래 쉬다 보면 몸 안의 푸른 공기가 보여요 가끔씩 죽음이 물컹하게 씹힐 때도 있어요 술 담배를 끊으려고 마세요 오염투성이 삶을 그대로 뱉으면 전깃줄과 대화할 수도 있어요 당신이 뜯어먹은 책들이 통째로 나무로 변해 한 호흡에 하늘까지 뻗어갈지도 몰라요 아, 사랑.. 言/오래묵을詩 2010.03.14
사람을 쬐다 사람을 쬐다 -유홍준- 사람이란 그렇다 사람은 사람을 쬐어야지만 산다 독거가 어려운 것은 바로 이 때문, 사람이 사람을 쬘 수 없기 때문 그래서 오랫동안 사람을 쬐지 않으면 그 사람의 손등에 검버섯이 핀다 얼굴에 저승꽃이 핀다 인기척 없는 독거 노인의 집 군데군데 습기가 차고 곰팡이가 피었다.. 言/오래묵을詩 2010.03.12
여자를 위하여 여자를 위하여 -이기철- 너를 이 세상의 것이게 한 사람이 여자다 너의 손가락이 다섯 개임을 처음으로 가르친 사람 너에게 숟가락질과 신발 신는 법을 가르친 사람이 여자다 생애 동안 일만 번은 흰 종이 위에 써야 할 이 세상 오직 하나 뿐인 네 이름을 모음으로 가르친 사람 태어나 최초의 언어로, .. 言/오래묵을詩 2010.02.19
울어라 봄바람아 울어라 봄바람아 -김용택- 강변을 너무 오래 걸어서 내 발등에는 풀잎이 아닌 이슬이 아닌 꽃잎이 떨어진다. 산을 너무 오래 바라보았는가, 산을 기대고 선 내 슬픈 등을 산은 멀리 밀어낸다. 봄이 와서 꽃들이 천지간에 만발하고 나는 길을 잃었다 너는 어디에서 꽃 피느냐 인생은 바람 같은 것이어서 .. 言/오래묵을詩 2010.02.03
연가 9 연가 9 -마종기- 전송하면서 살고 있네 죽은 친구는 찾아와 봄날의 물속에서 귓속말로 속살거리지 죽고 사는 것은 물소리 같다 그럴까, 봄날도 벌써 어둡고 그 친구들 허전한 웃음 끝을 몰래 배우네 言/오래묵을詩 2010.01.30
향긋한 친밀감을 위하여 향긋한 친밀감을 위하여 -신현림- 기분 좋은 사람과 함께 있으면 물안개 자욱한 강변에 있는 느낌입니다 묘하게 안정되고 평화로운 이 느낌...... 친밀감이겠죠 서로 깊이 알아 가는 시간 서로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시간 주는 것이 많이 얻는 거예요 아낌없이 주되, 처음엔 말을 아끼세요 상대방의 말을.. 言/오래묵을詩 2010.01.09
새 해를 기다리는 노래 새 해를 기다리는 노래 -이기철- 아직 아무도 만나보지 못한 새 해가 온다면 나는 아픈 발 절면서라도 그를 만나러 가겠다 신발은 낡고 옷은 남루가 되었지만 그는 그런 것을 허물하지 않을 것이니 내 물 데워 손 씻고 머리 감지 않아도 그는 그런 것을 탓하지 않을 것이니 퐁퐁 솟는 옹달샘같이 맑은 .. 言/오래묵을詩 2009.12.02
11월 11월 -이외수- 세상은 저물어 길을 지운다 나무들 한 겹씩 마음 비우고 초연히 겨울로 떠나는 모습 독약 같은 사랑도 문을 닫는다 인간사 모두가 고해이거늘 바람은 어디로 가자고 내 등을 떠미는가 상처 깊은 눈물도 은혜로운데 아직도 지울 수 없는 이름들 서쪽 하늘에 걸려 젖은 별빛으로 흔들리는 1.. 言/오래묵을詩 2009.11.24
까치밥 까치밥 -워낭- 팔작八鵲 계집애야 까치 같은 계집애야 저 감나무 우듬지에 달랑 살랑 밥 열렸다 동녘서녘 노을꽃에 된서리로 뜸을 들여 콩당 가슴 뭉클 눈물 내가 지어 내걸었다 네가 즐길 허공만찬 붉은 눈물 한줌이다 과아악곽 꽈아악꽉 言/오래묵을詩 2009.11.24